손 대위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어요. 아주 피곤했다는 것만 빼면요.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근무 중에 깜빡 엎드려 잠에 들고 말았어요."
"잠깐 잠 자면 안되나요?"
"아주 안될건 없어요. 하지만 저녁점호시간 조금 전이었다는게 문제였죠. 사람 수를 세야하거든요. 그때가 아니면 적당히 눈치껏 잠자도 괜찮은건데 말이에요."
"당직을 혼자서지는 않을텐데요."
"맞아요. 보통은 혼자 당직을 서지 않죠. 하지만 그날은 손세호 대위와 함께 당직을 서는 날이었어요. 손 대위는 대위 중 막내라 항상 너무 바빠서 당직실에 거의 있지 못한답니다. 모두들 손 대위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손 대위가 아니면 그 수많은 잡일을 도맡아서 할 능력자가 없어요."
"그렇군요. 잠자느라 당직실에 안 오는 대위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맞아요. 손 대위는 참 좋은 사람이죠. 병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간부라는 평을 들어요. 하지만 할 일이 많은 사람이 꼼꼼하기까지 해서 일을 할 때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저는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누락없이 일 하는것 만으로도 최고라 생각해도 충분하나?"
"네. 누락없이 일하는건 참 중요하니까요. 누락되면 처음부터 모든 일을 다시 해야할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사고가 터질수도 있죠. 그날도 손세호 대위가 저를 누락하지 않은 덕분에 제가 저녁 점호에 늦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손 대위가 저녁 점호 직전에 저를 깨우러 오더군요. 늦지 말고 잘 준비하라면서요. 하여간 꼼꼼한 사람이에요."
"다행이네요. 저녁 점호는 잘 진행했나요?"
"네. 항상 하던 일인걸요. 그 날도 어김없이 72명 전부가 있었어요. 탈영이나 자살은 옛날 군대에서나 있을만한 일이죠. 하지만 문제는 제가 당직실로 복귀하면서부터 시작됐어요."
"무슨 문제가 있었죠?"
"당직실에 도착해보니 또 다른 제가 이미 엎드려서 자고 있더군요."